
수척해진 어린이가 바르샤바 게토의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 폴란드, 바르샤바, 1940년부터 1943년 사이. 사진 »
게토의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어린이들. 폴란드, 바르샤바, 1940년부터 1943년. 사진 »
게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 감옥의 울타리를 통하여 아이와 작별하는 가족들. 이 중앙 감옥은 “게스페르(Gehsperre)” 작전 과정에서 어린이들, 병자들과 노약자들을 헤움노(Chelmno)로 수송하기 전에 임시로 수용하는 장소였다. 폴란드, 로츠, 1942년 9월. 사진 »
1942년 “게스페르(Gehsperre)” 작전 중, 폴란드의 로츠 게토에서 실시된 유태인 어린이의 수송. 사진 »
코프노 게토에서 찍은 가족 사진의 두 어린 형제. 한 달 후, 그들은 마이다네크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리투아니아, 코프노, 1944년 2월. 사진 »
수용소 해방 직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 어린이들이 어린이 막사로부터 걸어 나오고 있다. 폴란드, 1945년 1월 27일 이후. 사진 »
해방 직후, 부헨발트의 “어린이 블록 66”-어린이를 위한 특별 막사. 독일, 1945년 4월 11일 이후. 사진 »
르 샹봉 쉬르 리니옹 마을의 개신교도들의 도움으로 보호된 유태인 어린이들. 프랑스, 1941년부터 1944년 사이. 사진 »
브루노 신부(Father Bruno)와 그가 독일인으로부터 숨겨준 유태인 어린이들. 이후에 야드 바셈(Yad Vashem)은 브루노 신부(Father Bruno)를 “나라의 의로운 사람” 으로 추대하였다. 벨기에, 전쟁 중. 사진 »
코프노 게토를 빠져 나가기 직전의 어린 사촌 자매 두명. 리투아니아 가족들이 이들을 숨겨 주었으며, 이 두 어린 소녀들은 전쟁 중에 살아남았다. 리투아니아, 코프노, 1943년 8월. 사진 »
바드 라이헨할 난민 수용소의 어린이들. 독일, 1945년. 사진 »
인더스도르프 수도원 어린이집의 소녀. 이 사진은 생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하여 촬영되었다. 생존 가족을 찾아 주기 위하여 유태인과 비 유태인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어 신문에 공고하였다. 독일, 1945년 5월 이후. 사진 »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위해 독일 내 미군 점령지에 모인 유태인 난민 어린이들. 이들 중 한 난민이 시온주의자 깃발을 흔들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1946년 4월 10일. 사진 »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알리야 베트(“불법” 이민)에 참여하기 위하여 마르세이유 기차역에 도착한 독일계 유태인 고아. 프랑스, 마르세이유, 1948년 3월 25일.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