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ansport of Jewish prisoners marches through the snow from the Bauschovitz train station to Theresienstadt. [LCID: 6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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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순으로 정렬된 홀로코스트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사료들은 이 시대 인간의 경험을 증인 하는 기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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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레고르 볼파르트(Gregor Wohlfahrt)의 처형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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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 당국은 바바라 볼파르트(Barbara Wohlfahrt)에게 남편의 처형이 1939년 12월 7일 아침에 시행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고지를 보냈다. 볼파르트의 신체적 조건이 독일 군으로 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치는 그가 종교적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한다고 하여 처형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볼파르트는 군 복무가 살인하지 말라는 성경의 계율을 위반한다고 믿었다.…

    그레고르 볼파르트(Gregor Wohlfahrt)의 처형 고지
  • “난민들의 비극”이라는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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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에 게재된 “난민들의 비극”이라는 신문 기사. 이 기사는 구호 단체인 미국 유태인 합동 분배 위원회의 모세스 베클만(Moses Beckelman)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작성된 것이다. 이 기사에는 상하이, 고베(일본), 리스본(포르투갈)등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로 이르는 경유 도시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난민들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사태를 다루고 있다.…

    태그: 미국 난민
    “난민들의 비극”이라는 신문 기사
  • "세인트 루이스"의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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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실과 방 번호를 보여주는 2-프로펠러 여객선 "세인트 루이스"의 도면. 1939년, 이 독일 여객선은 쿠바에 임시 피난을 가던 약 1,000명의 유태인 난민들을 실어 날랐다. 하지만 이 여객선은 쿠바와 미국에서 차례로 난민의 입국을 거절 당한 후에 유럽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세인트 루이스"의 도면
  • “세인트 루이스”호에 승선한 모리츠 쉬엔벨르거에게서 온 무선 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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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5월 25일, 예술가 모리츠 쉬엔벨르거는 독일 함부르그를 출발하여 쿠바의 하바나를 향하는 “세인트 루이스”호 선상에서 이와 같은 무선 전보(라디오 파를 이용하여 보내는 전보)를 보냈다. 이 항해에서 “세인트 루이스”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이주하고자 하는 900여 명 이상의 유태인 난민을 싣고 있었다. 무선 전보의 일부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회복되어 이번 토요일에…

    “세인트 루이스”호에 승선한 모리츠 쉬엔벨르거에게서 온 무선 전보
  • 손으로 그린 웨스트보로크 임시 수용소의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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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에 불법으로 이민오는 유태인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웨스터보르크에 수용소를 설치하였다. 이 스케치는 미국으로 이민 오게된 유태인 수감자에의해 그려졌다. 1942년 초, 독일 점령 당국은 웨스터보로크를 확장하여 유태인을 위한 임시 수용소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였다. 1942년 7월부터 네덜란드의 유태인들을 체계적으로 웨스터보로크에 수용하기 위한…

    손으로 그린 웨스트보로크 임시 수용소의 평면도
  •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의 위조된 교사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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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말,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은 이 위조 졸업장과 다른 위조 신분증 및 관련 서류를 취득하였다. 그녀는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회원으로서 유태인 어린이를 구조하는 활동을 수행할 때, 시몬느 베를린으로 행세하면서 체포되는 것을 피하고 거주지를 바꿀 수 있었다. 바일은 1940년, 스트라스부르그의 사회 복지 학교에서…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의 위조된 교사 자격증
  •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의 유치원 교사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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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은 스트라스부르그의 사회 복지 학교에서 프랑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1943년 말, 바일은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위하여 위조 신분증을 취득하였다. 바일의 새로운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에는 그녀의 이름이 “시몬느 베를린(Simone Werlin)”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의 유치원 교사 자격증
  •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의 허위 학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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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말, 위조 신분증을 획득한 뒤, 시몬느 바일은 시몬느 베를린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1938-1939년도 학생증까지 위조하였다. 학생증에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사회 복지 학교 재학생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위조 서류와 신분증을 사용하여 바일은 프랑스의 샤또후로 이주하여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의 허위 학생증
  • 알리스 “사라” 마이어(Alice "Sara" Mayer)에게 발행된 독일 여권(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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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2월 24일, 독일 빙겐에 사는 알리스 “사라” 마이어(Alice "Sara" Mayer)에게 발행된 독일 여권 마이어의 딸인 엘렌(Ellen) 역시 여권에 명시되어 있다. 어머니와 딸의 이름 둘 다 가운데에 “사라(Sara)”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름의 첨가는 1938년 8월 17일 이후로 법에 의해 의무 사항이 되었다. 그러므로 “비 유태인” 이름을 가진 유태인 여성은 모든 공식 문서에 중간…

    알리스 “사라” 마이어(Alice "Sara" Mayer)에게 발행된 독일 여권(내부)
  • 에르나 “사라” 쉴레징거(Erna "Sara" Schlesinger)에게 발행된 독일 여권(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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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7월 8일, 독일 경찰 당국은 이 여권을 베를린의 에르나 “사라” 쉴레징거(Erna "Sara" Schlesinger)에게 발행하였다. 여권의 첫 번째 페이지에는 독일 내 유태인 신분 확인을 용이하게 했던 독일 법이 나와 있다. 1938년부터 독일 규정은 “비 유태인” 이름을 가진 유태인 여성은 모든 공식 문서에 중간 이름으로 “사라”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유태인 남자는 그들의 이름에…

    에르나 “사라” 쉴레징거(Erna "Sara" Schlesinger)에게 발행된 독일 여권(내부)
  • 위조 신분증 서류: 시몬느 바일(Simone W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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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은 “시몬느 베를린”으로 행세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 빈 신분증 카드에 그녀의 사진을 붙여 위조 신분증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도장과 서명은 레지스탕스 관계자와 그녀에 동조하는 정부 관리들이 제공하였다. 이러한 위조 서류는 바일이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회원으로서 유태인 아동을…

    위조 신분증 서류: 시몬느 바일(Simone W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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